
종이 위의 승리, 사람 안의 평화
테헤란 시내 어느 골목 벽에는 협상가들의 얼굴을 그린 벽화 하나가 새로 걸렸다. 백 일이 넘도록 계속된 폭격 끝에, 이란과 미국은 나란히 스스로 승리했다고 외치고 있다. 승리를 외치는 두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지는 풍경은 어딘가 낯설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양쪽 모두가 이토록 절박하게 출구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공식적인 전투는 멈췄지만, 진짜 어려운 협상은 이제 막 걸음을 뗐을 뿐이다. 승리라는 이름표를 서로 다른 뜻으로 붙여 놓은 채, 두 나라는 같은 문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다.
이란에 이번 양해각서는 단순한 휴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재래식 군사력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이기는 것은 애초에 테헤란의 목표가 아니었다. 이슬람 공화국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지도부가 여전히 제 기능을 하며, 협상력이 완전히 소진되지 않은 채 이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것이 진짜 목표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각각 서명한 이 문서는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60일 협상 틀을 열어주는 동시에,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의 군사작전을 즉각 멈추고,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며, 이란 선박에 대한 미국의 해상 봉쇄를 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란이 치러야 할 대가
이 부분은 이란에 상대적으로 가벼운 편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에 협조하고,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고농축 우라늄과 농축 프로그램의 미래를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정도다. 반면 워싱턴이 내놓은 약속은 훨씬 두툼하다. 봉쇄 해제, 석유 수출 제재 면제, 동결 자산 활용, 그리고 최소 3천억 달러 규모의 재건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테헤란의 지도부가 이 문서를 승리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첫 반응은 뜻밖으로 신중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 합의가 최고국가안보회의의 책임 아래 승인된 것이라는 점을 굳이 짚었다. 이 한 문장 속에는 계산된 거리 두기가 숨어 있다. 협상이 성공하면 자신도 그 성과를 나눠 가지되, 실패하면 전적인 책임에서는 비켜설 수 있는 자리를 미리 마련해 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이에 낀 협상단이다. 혁명수비대와 국영 언론, 강경파 정치인들은 지난 몇 주 동안 지지층을 향해 미국과 이스라엘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다는 선전을 쏟아내 왔다. 기대는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농축 우라늄이나 핵 시설 문제를 두고 어떤 양보라도 내놓는 순간, 그것은 승리 선언 이후에 나온 굴복으로 비칠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아무 양보 없이 버티면 협상 자체가 깨지고, 휴전은 다시 전쟁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이란 의회 의장이자 협상단 대표인 갈리바프는 이 좁은 길 위에서 도전적인 어조를 택했다. 그는 국영방송에 나와, 자신은 외교관이 아니지만 미국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잘 안다는 취지로 말했다. 전직 혁명수비대 사령관인 그의 발언은 워싱턴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타협을 극도로 불신하는 국내 강경파를 다독이려는 몸짓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2015년 핵 합의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이유로 강경파와 정적들에게 두고두고 공격받았다. 페제시키안과 갈리바프에게 주어진 과제는, 반발이 거세지기 전에 이 휴전의 틀을 정치적 성공으로 굳히는 일이다.
대서양 건너편의 풍경도 그리 평온하지만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를 "중대한 승리"라 칭하며, 이란의 핵무기 획득을 막겠다는 자신의 전쟁 목표를 이룬 것이라 자평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즉각적인 승리는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며 세계 경제가 숨통을 튼다는 사실일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고 해협이 사실상 막혀 있던 동안, 치솟는 기름값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은 여론조사마다 뚜렷하게 확인되었다. 경제에 대한 불만은 애초에 트럼프를 백악관으로 다시 불러들인 이유 중 하나였기에, 이 합의는 그에게 숨 돌릴 틈을 준 셈이다.
하지만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매섭다. 트럼프는 미국이 이란에 3천억 달러를 지급했다는 주장을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지만, 평소 그의 든든한 동맹이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신정주의 세력에 거액을 안겨주는 것이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며 날을 세웠다.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은 한발 더 나아가 이를 미국의 굴욕적인 패배라고 잘라 말했다.
게다가 이번 양해각서에는 이란의 역내 대리 세력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지난 3월 국경 밖에서 무장 세력을 지원하는 이란의 행보를 막겠다고 공언했던 트럼프의 다짐과는 다른 방향이다.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봉쇄를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니, 이 휴전이 얼마나 얇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지 짐작이 간다.
우리는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진다. 정치인들은 서명하고, 언론은 승리를 외치고, 시장은 안도하지만, 그 이면에서 실제로 전쟁의 무게를 짊어졌던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협상 테이블 위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종이 위의 합의만으로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적개심과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정치적 휴전은 소중하고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진짜 평화의 전부는 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