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연맹이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을 막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랍연맹은 왜 가자 앞에서 손이 묶였나

아랍 22개국이 침묵하는 진짜 이유

팔레스타인을 아파하면서도 외면하는 아랍의 역설

▲ AI 이미지, 중동디스커버리신문 제공

성명서는 쌓이고, 회의는 이어진다. 카이로에서, 바그다드에서, 리야드에서 아랍 정상들이 둘러앉는다. 규탄과 우려가 낭독되고, 재건 기금 약속이 발표되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그러나 회의장 문이 닫히는 순간, 가자의 칸유니스 천막촌 위로는 여전히 같은 하늘이 내려앉는다. 거리에는 케피예를 두른 청년들이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고, 광장에는 구호가 메아리친다. 

 

그러나 깃발과 구호가 무기가 되지는 못한다. 3년째로 접어드는 참극 앞에서, 22개 회원국을 거느린 아랍연맹은 왜 이토록 말만 무성하고 손은 묶여 있는가. 베이루트 아메리칸대의 노학자 라미 쿠리는 이 물음에 세 겹의 답을 내놓는다. 그의 진단은 한 지역을 넘어, 힘 앞에서 침묵하는 모든 공동체를 향한 거울이 된다.

 

첫 실마리는 국가의 태생에 있다

 

오늘의 아랍 국가 대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의 이해에 맞춰 국경이 그어진다. 주민의 정체성과 권리보다 외부의 셈법이 먼저였다. 그 결과 이란이나 튀르키예와 달리, 아랍 세계는 자국의 자원과 인구, 지리를 온전한 힘으로 벼려 내지 못한다. 석유가 넘치는 나라조차 재정과 군사, 기술을 바깥 강국에 기댄다. 생존을 남의 손에 맡긴 나라는 주권도 그만큼 내어 준다. 한 세기 전에 그어진 국경선이, 오늘의 무력함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정면으로 맞서는 비용이 감당 못 할 만큼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립은 선포로 완성되지 않는다. 밥과 무기와 기술을 남에게 의존하는 한, 주권은 문서 위의 단어로만 남는다.

 

두 번째 실마리는 두려움이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예멘, 소말리아, 수단으로 이어지는 무너진 정치체들은, 후견국과 이스라엘에 맞선 대가가 무엇인지 날마다 일깨우는 거울이다. 미국은 수자원과 식량, 에너지, 금융, 부채 관리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연결망을 짜 두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상업 결제망을 지렛대 삼아 제재의 칼을 겨눈다. 언론에서 트럼프를 비난하는 정도는 허용되지만, 실제로 그 축에 맞서는 순간 제재와 군사적 타격이 약한 나라의 존립마저 흔든다. 

 

세 번째 실마리는 정권과 국민 사이의 균열이다

 

이른바 '권위주의적 거래' 아래, 정부는 정책과 자원을 틀어쥐고 국민은 물과 식량, 교육과 의료를 국가에 기댄다. 이 계약을 지탱하지 못하는 나라는 실업과 빈곤, 종파 갈등으로 가장자리부터 허물어진다. 게다가 1979년 이후 대다수 아랍 정권은 이란을 최대 위협으로 여긴다. 헤즈볼라와 하마스, 예멘의 안사르 알라 같은 이란계 세력을 키우기를 꺼리니, 범아랍 공동 행동은 첫걸음부터 얼어붙는다. 세 실마리는 따로 놀지 않고 한 매듭으로 엉킨다. 의존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이 국민과의 거리를 벌리며, 그 거리가 다시 의존을 굳힌다.

 

쿠리는 60년간, 이 땅을 지켜본 증인이다. 그는 아랍의 정부도 국민도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깊이 아파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권좌와 나라의 안녕,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택일을 강요받을 때 지배층은 대개 생존을 앞세운다고 짚는다. 아랍연맹의 구조도 발목을 잡는다. 만장일치 방식으로 굴러가는 이 기구는 우편 요금이나 항공 운임을 넘어서는 사안에서는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실제로 2025년 5월 바그다드 정상회의는 즉각적 휴전과 강제 이주 반대를 외쳤고, 이라크는 재건 기금 2천만 달러를 약속했다. 앞서 리야드에서 열린 아랍·이슬람 합동 정상회의도 강력한 규탄 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선언은 선언에 머물렀다. 구체적 장면은 더 냉정하다. 요르단은 해마다 약 20억 달러의 미국 원조에 기댄다. 트럼프는 그 돈을 가자 난민 수용과 맞바꾸려 압박한 바 있다. 

 

한편, 이스라엘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노사이드 혐의로 제소되어 있고,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말의 성찬과 행동의 빈곤, 그 간극이 이 지역의 민낯이다.

작성 2026.07.04 20:34 수정 2026.07.0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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