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4일, 지구의 두 도시가 정반대의 표정을 짓는다. 워싱턴에서는 불꽃이 하늘을 수놓고, 미국이 건국 250주년을 자축한다. 같은 시각 테헤란에서는 검은 물결이 거리를 뒤덮는다. 관 하나를 향해 수백만이 가슴을 친다. 한쪽은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밝히고, 다른 쪽은 지도자의 관 위에 촛농 같은 눈물을 떨군다. 우연이라기엔 날짜가 너무 공교롭다.
관 속의 인물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다. 그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으로 자택에서 목숨을 잃었다. 1989년부터 37년간 이란을 통치한 사람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 3월로 예정됐던 장례는 넉 달을 미뤄졌고, 마침내 7월 3일부터 9일까지 이레에 걸쳐 치러진다. 테헤란에서 쿰으로, 국경을 넘어 이라크의 나자프와 카르발라로, 그리고 그의 고향 마슈하드까지. 관은 시아파 이슬람의 성지를 차례로 밟는다. 죽은 자의 여정이 곧 살아 있는 체제의 지도(地圖)다.
이란 당국은 이 죽음을 '순교'로 부른다. 애도는 국민의 의무가 된다. 거리의 현수막에는 "우리는 봉기해야 한다"라는 구호가 나부낀다. 아랍어권 청중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해 일어서라"로 바꿔 단다. 두 문장 모두 꾸란의 한 구절에 뿌리를 둔다. 테헤란의 거대한 모살라 사원에는 붉은 깃발이 내걸렸다. 거기 적힌 글귀는 "오, 후세인의 복수자들이여". 1,300여 년 전 카르발라에서 쓰러진 예언자의 손자, 그 순교의 기억을 오늘의 피에 겹쳐 놓는 장치다. 붉은색과 검은색이 나란히 걸린다. 애도와 순교, 그리고 복수의 다짐이, 한 화폭에 담겨있다.
이 의식의 얼굴은 주먹 하나로 압축된다. 하메네이가 굳게 쥔 주먹을 붉은 바탕에 새긴 그림이, 장례의 상징으로 곳곳에 걸렸다. 1981년 폭탄 테러로 오른팔을 잃다시피 한 그가, 죽어서야 그 손을 들어 올린 셈이다. 장례가 이슬람력 무하람 달에 겹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배신과 순교의 기억이 밴 그달에, 테헤란의 군중은 '미국에 죽음을'을 외쳤고 붉은 팻말에는 트럼프를 겨눈 구호가 적혔다.
정작 무대 위에 없는 사람이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가 된 아들 무즈타바 하메네이다. 그는 공습에서 부상한 뒤 한 번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암살 위험 탓에 아버지의 장례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국영 매체는 전한다. 권력은 이어졌으되, 그 얼굴은 그림자 속에 있다. 반대편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 올라 미국의 250년을 노래한다. 한 사람은 빛 속에서 미래를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어둠 속에서 침묵한다. 같은 하늘 아래 이토록 다른 두 장면이 동시에 흐른다.
조문객의 면면도 하나의 언어다. 러시아는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파키스탄은 샤리프 총리와 육군참모총장을 보냈다.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예멘 후티 등 이란이 이끄는 '저항의 축'도 테헤란에 모였다. 반면 서방과 걸프 아랍 정부의 고위 인사는 자리를 비웠다. 진짜 압권은 조문단마다 골라 낭독한 꾸란 구절이다. 사우디 대표단 앞에서는 7세기 바드르 전투를 그린 구절이 울렸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맞섰다는 그 전장의 이야기가 오늘 누구를 겨눈 것인지, 아랍 언론은 오래 곱씹었다.
숫자마저 어긋난다. 지난겨울, 이란의 거리에는 다른 군중이 있었다. 치솟는 물가와 무너지는 리알화에 분노한 시민들이 하메네이의 죽음을 외쳤다. 정부는 그들을 유혈로 진압했다. 그리고 반년 뒤, 같은 거리에 이번엔 그를 추모하는 물결이 흐른다.
쿰의 금요 예배 인도자는 이 장례 행렬을 "이슬람 공화국을 향한 또 하나의 국민투표"라 불렀다. 1989년 호메이니의 장례에는 천만 명이 몰렸고, 인파에 짓눌려 여덟 명이 숨졌다. 이란은 그 기록마저 넘어서려 한다. 전쟁으로 나라는 수천 명을 잃었고, 경제는 휘청였다. 그럼에도 테헤란은 이 마지막 행렬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표는 셈하기 나름이다. 관 앞에 모인 눈물이 모두 같은 색은 아니다. 어떤 눈물은 슬픔이고, 어떤 눈물은 두려움이며, 또 어떤 눈물은 그저 동원된 의무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