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의 예술 인생은 한 가지 역할로 설명하기 어렵다.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한 성악가이자 직접 오페라단을 창단해 수많은 작품을 제작해 온 예술감독이며, 지역에서 새로운 오페라 축제를 만들고 이를 꾸준히 이끌어온 기획자다. 동시에 입양 어린이들과 오랜 시간 음악으로 함께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실천해왔다.
그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꾸준히 이어왔다는 점이다. 오페라단과 축제, 합창단, 그리고 공연 프로젝트까지 하나의 무대를 만들고 그것이 다음 무대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왔다.
2025년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제10대 이사장에 취임한 김수정은 현재 한국 민간 오페라의 경쟁력 강화와 대중화, 차세대 예술인 육성, 세계무대 진출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 제주에서 시작된 음악의 뿌리
김수정 이사장의 음악적 뿌리는 고향 제주에 있다.
최근 공개된 인터뷰에 따르면 김 이사장은 제주시 원도심 칠성통에서 금은방 ‘시공사’를 운영했던 김종식 씨의 1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는 교회 장로와 권사였으며 음악을 가까이하는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특히 5남매 가운데 세 사람이 전문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오빠 김희철은 제주국제합창제 예술감독, 여동생 김수선은 파이프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삶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가족사진을 사용한 음반 이미지에는 ‘Brother & Sister 김희철 & 김수정’이라는 문구와 함께 「주님은 내 삶에 힘 되시네」가 적혀 있다. 김수정의 음악적 뿌리가 가족과 신앙, 어린 시절의 환경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수정의 음악적 재능은 일찍 드러났다. 신성여중 1학년이던 1976년 제15회 전도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뒤 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신성여고 재학 시절에는 제주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가며 작곡을 배울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 작곡과 성악, 두 시선으로 음악을 배우다
김수정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작곡과 성악을 함께 공부했다는 점이다.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진학한 그는 졸업 후 다시 성악과에 들어가 성악가의 길에 도전했다. 최근 인터뷰는 그를 연세대학교에서 작곡과와 성악과를 모두 졸업한 최초의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작품의 구조와 음악을 분석하는 작곡의 시선, 그리고 무대 위에서 음악을 구현하는 성악가의 경험은 훗날 그가 공연 전체를 바라보는 예술감독과 제작자로 활동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1994년에는 폴란드로 건너가 바르샤바 쇼팽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유학 중 도전한 바르샤바 국립오페라단 오디션에서 동양인 최초의 솔리스트로 선발되는 성과를 거뒀다.
1996년 오페라 「신데렐라」 주역으로 데뷔한 뒤 약 3년 6개월간 폴란드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콘서트와 20여 편의 오페라 무대를 경험했다. 예술의전당에 공개된 프로필에는 바르샤바 국립오페라단 솔리스트 활동 이후 약 1,200회의 콘서트와 다양한 오페라 무대에 출연한 것으로 소개돼 있다.
■ 무대 위 성악가에서 공연을 만드는 제작자로
유럽 무대에서 쌓은 경험은 귀국 이후 김수정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무대 위에서 한 역할을 노래하는 데 머물지 않고 작품을 선택하고, 예술가를 모으고, 제작 환경을 만들고, 관객과 만나는 과정까지 공연 전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연장선에서 2002년 글로벌오페라단을 창단했다.
당시 30대였던 김수정의 오페라단 창단은 공연계에서도 주목받았다. 2002년 경향신문은 그를 국내 최연소 오페라단장으로 소개하며 글로벌오페라단 창단 공연인 오페레타 「박쥐」를 조명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역할은 성악가에서 제작자·기획자·예술감독으로 확장됐다.
「박쥐」를 비롯해 「나비부인」, 「코지 판 투테」, 「토스카」, 「마술피리」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거나 출연하며 ‘어떻게 하면 관객과 오페라의 거리를 좁힐 것인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다.
■ 제주에 만든 오페라의 지속 가능한 무대
김수정의 제작자이자 예술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잘 보여주는 작업 가운데 하나가 서귀포오페라페스티벌이다.
김수정은 고향 제주에 지속적으로 오페라를 만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서귀포오페라페스티벌을 처음 기획했다. 기존 축제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첫 회부터 축제의 방향과 틀을 만들고 작품 선정과 출연진 구성, 제작 전반을 이끌어왔다.
2026년 11회를 맞은 페스티벌에서도 예술감독을 맡아 베르디 「리골레토」를 선보였다.
지역에서 오페라 축제를 지속한다는 것은 예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제작비, 인적 네트워크, 관객 개발과 지역사회와의 협력까지 함께 풀어가야 하는 작업이다. 김수정은 이러한 과정을 꾸준히 이어오며 서귀포오페라페스티벌을 제주를 대표하는 오페라 축제로 성장시켜왔다.
이 축제는 고향 제주에 대한 애정이자, 중앙에 집중된 오페라를 지역 관객의 일상 가까이 가져오기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
■ 공연장을 넘어,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다
김수정의 예술 활동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이다.
2006년 ‘입양의 날’ 행사에 초청 성악가로 참여한 김수정은 입양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할 기회를 갖게 됐다.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음악이 공연장을 넘어 한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고 한다.
그 인연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는 활동을 이어오다 2010년 공개 입양 어린이들로 구성된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을 창단했다. 그 이전의 활동까지 포함하면 입양 어린이들과 음악으로 함께해 온 시간은 17년에 이른다.
김수정은 합창단의 운영과 공연, 교육 환경을 꾸준히 만들어가며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왔다.
합창단은 2012년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와 미국 동부지역 순회공연을 진행했고, 2017년에는 이탈리아 토레 델 라고 오페라 축제에도 참가하는 등 활동 영역을 세계로 넓혔다.
김수정에게 음악의 의미도 이 과정에서 더욱 넓어졌다.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는 음악에서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음악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2011년 보건복지부장관 나눔상, 2014년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상과 국무총리 표창, 2015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문화예술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2026년 6월에는 입양 아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입양문화 확산에 기여한 공로로 사회공헌 여성리더상을 받았다.
■ ‘환대’, 공연을 넘어 이어지는 약속
김수정이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콘서트 「환대」다.
「환대」는 2022년 해외 입양인들을 고국에서 따뜻하게 맞이한다는 의미로 시작됐다.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고 2023년 롯데콘서트홀, 2024년 국립극장에 이어 2025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며 지속돼 왔다.
2025년 열린 「Welcome to the Opera & Cine Music – 환대」는 글로벌오페라단이 주최하고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이 함께한 무대로, 오페라 아리아와 한국 가곡, 영화음악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김수정은 총예술감독을 맡았다.
처음 해외 입양인을 환영하고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환대’의 의미도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넓어졌다. 국내 입양인과 가족, 그리고 일반 관객까지 함께하며 이제는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두를 위한 환대’로 확장되고 있다.
김수정에게 「환대」는 단발성 콘서트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공연 프로젝트다.
해마다 공연장은 달라질 수 있지만 ‘누군가를 기꺼이 맞아들이는 것’이라는 환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음악을 통해 사람을 맞이하고, 서로 다른 삶을 연결하며, 예술이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묻는 무대다.
그런 의미에서 「환대」는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에서 시작된 김수정의 오랜 사회공헌 활동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음악을 특정한 사람들만 향유하는 예술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위로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예술로 확장하는 것이다.
■ 민간 오페라의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다
오랜 공연 현장과 제작 경험은 이제 개별 오페라단을 넘어 한국 민간 오페라계 전체를 바라보는 역할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부터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부이사장으로 활동한 김수정은 2025년 제10대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취임 이후에는 연합회 사무실을 서울 대학로에 마련하고 행정·기획 기능을 강화했으며, 연합회와 오페라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를 새롭게 구축해 전국 오페라단들과의 소통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김수정이 연합회에서 강조하는 것은 특정 오페라단의 성과보다 전국 민간 오페라단들이 서로 교류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각 단체의 예술적 개성을 존중하면서 제작 경험과 인적 자원을 공유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며, 민간 오페라가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방향을 강조하는 데에는 오랜 현장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직접 오페라단을 만들고, 지역의 오페라 축제를 꾸준히 이어왔으며, 입양 어린이들과 오랜 시간 음악으로 함께해온 경험은 ‘좋은 기획’ 못지않게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김수정은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 글로벌오페라단 단장, 한국입양어린이합창단 이사장, 제주헤리티지포럼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에서도 비상임 이사를 지냈다.
■ 노래하는 사람에서, 무대를 만드는 사람으로
김수정의 40여 년 음악 여정을 돌아보면 하나의 흐름이 보인다.
제주에서 음악을 꿈꾸던 소녀는 작곡을 공부했고 다시 성악에 도전했다. 폴란드로 건너가 바르샤바 국립오페라단의 동양인 최초 솔리스트가 됐고, 귀국 후에는 글로벌오페라단을 창단해 직접 공연을 만드는 제작자의 길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 무대는 다시 지역의 관객과 입양 어린이, 후배 음악가들에게로 이어졌다.
그래서 김수정의 이력을 설명하는 데에는 ‘확장’과 함께 ‘지속’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한 번 무대를 만드는 것보다 그 무대가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한 사람을 위한 음악이 또 다른 사람과 사회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예술 활동을 관통해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귀포에서 시작한 오페라 축제도, 입양 어린이들과의 음악적 동행도, 해외 입양인을 맞이하기 위해 시작한 「환대」도 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예술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을 한 번으로 끝내지 않는 것이다.
이제 그의 관심은 한 편의 성공적인 공연을 넘어 한국의 민간 오페라가 지속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예술가들이 활동하며, 더 많은 시민이 오페라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향하고 있다.
성악가 김수정, 예술감독 김수정, 제작자 김수정, 그리고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이사장 김수정.
서로 다른 역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 가지 일관된 방향이 있다.
음악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서 시작된 그의 음악은 한국의 공연장과 제주로 이어졌고, 입양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노래가 됐으며, 다시 누군가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환대’의 무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이 김수정의 지난 시간을 단순한 성악가의 이력이 아니라, 무대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며 그 시간을 꾸준히 이어온 예술가의 여정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유이다.














